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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순간들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숲길

동진대성 2016. 9. 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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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숲길
기사입력 | 2010.07.06 15:16
봉정암 적멸보궁의 숨은 매력은 아마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지리적 여건이 더했을 것이다. 다른 적멸보궁과 달리 봉정암은 해발 1244m의 내설악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왕복 22㎞(동절기엔 용대리-백담사 구간을 운행하는 버스가 운행을 멈춰 약 40㎞)의 발품을 팔아야만 참배할 수 있다. 따라서 봉정암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안락하지 못한 이 길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불자들의 순례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순례자의 길은 기독교 3대 성지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로 가는 길)’다. 프랑스의 국경도시 ‘생 장 피 드 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가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가는 800㎞의 여정이다. 1993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길은 오늘날 기독교도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순례자의 길로 이름을 얻고 있다.

불자들에게‘봉정암 가는 길’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처럼 순례자의 길이다. 돌과 바위투성이의 험한 산길이지만, 빼어나게 아름다운데다, 무엇보다 순례자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에 평화롭다. 이 길은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권세가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문명의 이기라는 자동차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걸어야만 다가갈 수 있다. 다섯 곳의 적멸보궁 중에 이처럼 먼 거리를 땀 흘려 직접 걸어서 다가갈 수 있는 곳은 봉정암뿐이다. 바로 봉정암 가는 길이 ‘이 땅 최고의 순례자의 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울창한 천연림 터널

‘봉정암 가는 길’은 ‘산티아고로 가는 길’만큼 길지는 않지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1300여 년 전 당나라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해 봉정암을 창건했던 자장의 선견지명이 녹아 있고, 소실된 봉정암을 중건한 원효의 땀방울이 맺혀 있으며, 독립과 불교 진흥을 모색했던 만해의 고뇌가 녹아 있는 길이기에 장구한 역사를 간직한 순례자의 길이다. 오늘날 수많은 불자가 이 순례자의 길을 찾는 이유도 시공을 초월해 자장과 원효와 만해를 만나는 한편, 힘든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만나고, 가족을 만나고, 중생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고자 함이 아닐까.

이 순례자의 길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유는 또 있다. 봉정암에 이르는 모든 여정이 울창한 천연림으로 덮여 있는 숲길이기 때문이다. 용대리-백담사-영시암-오세암(또는 수렴동대피소)-봉정암에 이르는 이 순례자의 길은 단풍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거제수나무, 함박나무, 벚나무, 개박달나무 등의 다양한 활엽수 천연림과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천연림의 터널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른 곳의 숲길과 달리 이 순례자의 숲길이 더욱 각별한 이유는 문명의 편리함이나 안락함 대신에 부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과 불자 상호간의 격려와 자신에게 던지는 용기가 충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대표적 행위인 직립보행을 통해서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불편함을 극복하면서 부처님의 나라에 다가갈 수 있는 원초적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숲길의 의미는 그래서 더욱 새롭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숲길
全 瑛 宇

● 1951년 경남 마산 출생

● 고려대 임학과 졸업

●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석사, 박사

● 現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 저서: ‘숲과 한국문화’ ‘나무와 숲이 있었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숲 보기 읽기 담기’ ‘한국의 명품 소나무’ 외 다수


보름 동안 독감을 앓다가 착 가라앉은 기분도 추스르고, 또 육체의 한계도 시험할 겸, 동해안에 200㎖의 비가 내린 다음날, 순례자의 길을 다시 나섰다. 20여 ㎞에 달하는 순례자의 길을 낮 시간에 거닐면서 고통도 많았지만, 그만큼 즐거움도 컸다. 미국의 심리학자 프레데릭 엠 허드슨 박사는 “노화(老化)란 육체는 쇠락해도 정신은 성장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던가. 나이 듦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기보다 자연에서 찾는 작은 즐거움에도 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긍정의 힘이 정신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던 걸음이었다. 독자 여러분도 올여름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행렬에 한번 동참해볼 의향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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