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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고등학교는 6.25사변 중 한국전에 참전해 전투 중이던 미군 40사단 장병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입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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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고등학교는 6.25사변 중 한국전에 참전해 전투 중이던 미군 40사단 장병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입니다

동진대성 2022. 7. 7.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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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加平 高等學校

가평고등학교는 6.25사변 중 한국전에 참전해 전투 중이던 미군 40사단 장병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전쟁 중에 미 보병 40사단 Joseph Clelant 사단장이 가평에서 전투를 하던 중 약 150여 명의 학생들이 천막 안에서 공부하는 모습에 감동해 40사단 장병들의 성금으로 이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1952년 한국전 당시 가평에 주둔했던 미 제40사단장은 예하 장교들과 1만5천 명 사병들이 각각 2달러를 갹출(醵出)한 돈 3만 달러를 모아 이 학교를 건립했습니다.

70년 전 2달러는 현재의 2달러와는 많은 차이가 나는 귀한 성금입니다. 40사단 공병들과 마을 주민들은 밤낮으로 일을 하여 40일 만에 교실 10개와 화장실 수위실 등 건물을 완성하였습니다.

학교명을 사단장 이름으로 하려하였으나, 사단장은 이를 거절해 40사단 장병 중 한국전에서 최초로 전사한 19살의 Kenneth Caesar의 이름으로 하는게 좋겠다하여 '카이사 중학교'라 명명하였습니다.

가평의 학부모들은 밤낮으로 들려오는 포성에 하루에도 몇 번씩 반공호로 몸을 숨겨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을 위해 천막 학교를 세우고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못 배운 한을 품고 살던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 만은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전쟁중에도 천막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육시켰던 것입니다. 자원 빈국 한국을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은 모두 부모님들의 열성적인 자녀 교육 덕분입니다.

이 학교는 1972년 '加平 高等學校'로 개명을 합니다. 학교 건축 표지석에는 '이 학교는 미 보병 40사단 장병들이 한국의 미래 지도자들을 기르기 위해 세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53년 휴전이 되고 40사단은 철수했지만 40사단 장병들은 첫 졸업식이 있었던 1954년에 장학금을 모아 축하해 주었고 또 매년 약 500달러의 장학금을 보내왔습니다. Clelant 소장은 그가 세상을 떠나던 75년까지 계속 '加平 高等學校'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해왔고 죽기 전에 '내 연금의 일부를 가평의 학생들을 돕는데 계속해서 쓰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단장 부인은 200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 동안 사단장의 유언을 받들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내왔습니다.

'加平 高等學校' 내의 멀티 학습관 2층에 약 20여평의 ‘한·미 동맹 기념관’(카이사 기념관)인 역사관이 있습니다. 역사관에는 40사단 병사들이 전쟁 당시 사용했던 손때 묻은 성조기와 미국을 상징하는 희망의 탑, 독수리상 등, 학교 건립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400여 장의 흑백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병들은 한 사람씩 세상을 떠났고. 2020년 졸업식에는 단 한 명의 노병만이 참석했습니다. ‘카이사 체육관’은 학생들의 체육 공간이면서 지역의 국제교류와 호국 보훈의 장소이며 대내외적 행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가평읍 교외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加平 高等學校' 졸업식은 매년 육군의장대가 와서 의장행열을 하고 한국군 장성들과 멀리 미국에서 온 40사단 장병들이 함께해 마치 지역축제처럼 성대하게 거행됩니다.

지금도 노병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금을 모아 매년 약 1천 달러 정도의 장학금을 전달합니다. 한국을 위해 합심하여 학교를 세워주고 지금도 잊지 않고 장학금까지 보내주는 미국 군인들의 숭고한 "대한민국 사랑"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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