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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과 법무부의 협업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본문
사기꾼과 법무부의 협업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민주당 정권은 프레이밍에 능하다. 프레임을 설정하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민주당에 프레임은 그저 세계를 해석하는 ‘인지의 틀’이 아니다. 그들의 프레임은 대안 세계를 창조하는 ‘제작의 틀’에 가깝다. 그들은 주어진 사실의 해석을 넘어 아예 대안적 사실을 만들어내려 한다. 이런 프레이밍의 방식은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민간 네트워크 이용한 수평적 협업으로 프레임 전환
과거 정보기관의 공작 정치와 유사한 연성 독재 방식
범죄 피의자가 공익 제보자로 의인화 되며 수사 방해
범법자가 외치는 검찰개혁, 수혜자는 범법자와 여권 실세
부드러운 공작정치
이런 것을 ‘공작정치’라 부른다. 과거에 공작정치는 주로 정보기관을 통해 이루어졌다. 독재정권 시절 안기부·보안사·대검 공안부나 경찰청 대공분실에서 조작한 수많은 사건들을 생각해 보라. 지금 민주당에서 하는 공작정치는 그와는 성격이 다르다. 조작이 국가 기관의 수직적 지시가 아니라 민간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수평적 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연성 독재의 방식이라 할까?
공작이 자꾸 반복되니 패턴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사기꾼들이 갑자기 폭로를 한다. 이들에게 증언(?)을 끌어내는 것은 친여 성향 변호사들. 일단 증언이 나오면 친여 매체들이 이들 범법자들의 주장을 검증 없이 내보낸다. 이어서 여당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검찰을 성토하면, 이를 받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다. 마지막으로 표적 인물에 대한 수사나 감찰이 이루어진다.
한명숙 사건에서 폭로자 역할을 한 것은 한신건영의 한만호와 동료 수감자들, 채널A 사건에서는 VIK의 이철과 제보자 지모씨였다. 라임 사건에서는 스타모빌리티의 김봉현 전 회장이 폭로자로 나섰다. 하나같이 중형을 선고 받았거나 중형이 예상되거나, 혹은 잡다한 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한 자들이다. 이들 범법자가 공익제보자로 행세하고 검찰은 졸지에 범죄집단으로 내몰린다.
이 공익제보(?)의 배후에는 늘 변호사들이 있다. 한만호 사건에서 검찰의 모해 위증교사를 주장하는 이의 법률대리인은 민본의 신장식 변호사. 민본은 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이다. 채널A 사건에서 감옥의 이철과 제보자 지모씨를 연결시켜준 것 역시 민본의 A 변호사. 듣자 하니 이번 김봉현 편지사건을 담당한 이도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회(민변) 출신이라고 한다.
대안현실을 날조하라
이어서 방송이 움직인다. 한명숙 사건의 경우에는 뉴스타파와 MBC의 피디수첩, 채널A 사건에서는 MBC 피디수첩과 KBS 뉴스, 김봉현 사건에서는 JTBC마저 꺾쇠 달고 합류했다. 매체들이 범죄자들의 주장을 검증 없이 내보내면, 정치인들이 이를 정치적 의제로 만든다. 최강욱·황희석·김남국·김용민 등 고정 멤버 외에 민주당의 돌쇠형 의원들이 말을 보태며 요란하게 바람을 잡는다.
그렇게 범인이 의인이고 검찰이 죄인인 대안세계가 만들어지면, 이제 법무부 장관의 시간이다. 독일에는 사례가 없고 일본에서는 딱 한 번 발동된 수사지휘권. 그것이 몇 달 사이에 벌써 서너 차례, 발동됐다. 일본에서는 그 일로 장관이 옷을 벗고, 한국에서는 검찰총장이 옷을 벗었다. 그렇게 중대한 수사지휘권을 산책 강아지 똥 싸듯이 발동한 것이다. 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한명숙 사건은 재심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9년 묵은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그 사건이 검찰총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모 부장검사와 관련이 있을 게다. 채널A 사건에서 표적이 된 것 역시 윤 총장의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었다. 이번 김봉현 사건에서는 아예 총장이 표적이 되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직접 감찰 운운하며 “결과에 따라 윤 총장의 해임건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국의 법무부가 검찰을 범인으로 매도하고 범법자를 의인으로 추앙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정의’다. 헌정사에 기록될 만한 중대한 결정들이 범법자들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에 기초해 내려졌다. 물론 범법자의 주장이라고 무조건 불신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일방적 주장을 검증 없이 공익 제보로 대접해 줘서는 안 된다. 그 이면에 무슨 동기와 배후가 있는지 누가 아는가.
범법자들의 거짓증언
그들의 증언(?)을 따져 보자. 한만호의 비망록은 이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됐던 것이다. 한만호가 9억원을 현금화 한 사실은 확인됐다. 이를 누구에게 건넸는지 기록한 장부도 있고, 돈을 건넨 비서의 증언도 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도 3억원이 건네진 사실은 인정했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번복된 증언은 허위로 밝혀진 셈. 검찰이 압박수사를 했을지는 모르나 허위증언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한동훈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철이 정치인 리스트를 갖고 있다’는 제보자 지모씨의 주장이나 ‘채널A 기자가 이철에게 허위증언을 강요했다’는 최강욱의 주장은 거짓이었다. 이철씨는 검찰조사에서 유시민에 관한 질문은 받은 바 없다고 증언했다. 그가 한동훈 검사장의 이름을 듣고 공포를 느꼈다고 한 날은 채널A에서 취재를 중단한 지 3일 후. 그런데 이 거짓말들을 근거로 수사지휘권이 발동됐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지난 8일 법정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증언했던 김봉현. 갑자기 “라임 관련 여권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연루된 사실이 없다.”고 말을 바꾸었다. 전관 출신 A변호사가 “여당 정치인과 강 전 수석을 잡아주면 보석으로 재판받게 해 주겠다.” 해서 허위증언을 했단다. 말이 되는가? 보석 결정은 검찰이 아니라 법원에서 하는 것인데.
라임 사건에 여권 정치인이 한 명도 연루되지 않았단다. 이 말을 믿으란다. 이미 이상호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이 8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기동민 의원 역시 적어도 고가의 양복을 받은 사실만은 확인됐다. 법정에서 강기정에게 5000만 원을 줬다고 한 것도, 이상호의 금품수수 사실을 언론에 제보하라고 시킨 것도 김 전회장 본인이었다. 이것도 검찰의 강요였던가?
권력비리가 검사 게이트로
김봉현이 검사들에게 술 접대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관 출신 A 변호사가 그들을 “추후 라임 수사팀에 합류할 검사들”이라고 소개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이게 말이 되려면 그에게 7개월 후에 꾸려질 수사팀에 누가 합류할지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어야 할 게다. 검찰이 야당 인사에 대한 수사를 덮었다는 주장도 거짓이었다. 그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벌써 마무리 단계에 있다.
그런데 이 허위진술을 근거로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왜 그랬을까? 물론 검찰과 총장에게 검사들의 비위를 알고도 덮었다는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다. 이 ‘중상모략’을 견디다 못해 결국 남부지검장이 사표를 던졌다.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 국감장의 여당 의원들은 검찰총장에게 옵티머스 수사를 덮었다는 엉뚱한 혐의를 뒤집어씌운다. 마치 스탈린주의 재판을 보는 듯하다.
김봉현은 “라임 사태와 본인 및 청와대 행정관, 여권 실세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와대 행정관이 이미 이 사건으로 징역 4년의 형을 받았다. 게다가 그가 후배에게 보낸 문자가 남아 있다. “금감원이고 민정실이고 다 형 사람이여.” 그의 말에서 ‘본인 및’이라는 표현에 주목하라. 자기를 무죄로 해주면 라임을 ‘검찰 관계자들이 연루된 사건’으로 바꿔주겠다는 얘기다.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그의 말을 받아 법무부 장관이 바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다. 라임 사건의 본질은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 검사 게이트’라는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피해자를 낳고 청와대 정무수석과 행정관, 여당 의원과 지역위원장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가 검사 몇 명의 술 접대 사건으로 둔갑해 버렸다. 청와대는 범법자와 법무부의 이 불결한 거래를 추인했다.
올바른 목적은 올바른 방법으로 달성돼야 한다. 그릇된 방식으로만 달성될 목표라면, 이미 목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범법자들이 외치는 검찰개혁. 누구를 위한 것일까? 확실한 것은, 이 개혁의 유일한 수혜자 역시 이들 범법자 “본인 및 청와대 행정관, 여권 실세들”이 될 거라는 점이다. 범법자와 법무부의 코아비타시옹. 남미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이 나라의 현실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1년 『검찰을 생각한다』에 이렇게 썼다. 권력 비리를 수사할 때 ‘청와대가 견제와 감시를 하고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면, 이것은 곧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수사를 방해하는 외형이 돼 버린다.’ 맞다. 그 일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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