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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순간들

영국 거부였던 피츠재럴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동진대성 2017. 9. 1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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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영국 거부였던 피츠재럴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뿐인 아들이 열 살을 갓 넘겼을 때 아내를 잃고, 정성을 다해 아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또한 병을 앓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혼자 남은 피츠제럴드는 그의 여생을 유명한 미술작품을 수집하며 그 슬픔을 달래려 노력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피츠제럴드 자신도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유언장을 쓰고 거기에 자기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를 밝혀 둡니다.

유언장에 따르면 그의 모든 소장품은 경매에 내놓게 되어 있었으며,
그 소장품 값어치는 수백만 파운드에 달했고 분량에서나 가치에서나 세상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수집한 귀한 소장품들은 양적으로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질적으로도 참으로 고귀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소장품을 사려는 사람들은 가히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소장품들은 경매에 앞서서 전시실에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전시된 소장품 중에는 별로 뛰어나지 않은 그림이 한 점 있었습니다. 그 작품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 제목의 작품으로서 지방의 한 무명 화가가 피츠제럴드의 외아들을 그린 볼품없는 그림이었습니다.

경매가 시작되자 제일 먼저 그 그림이 경매에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인기가 없어 아무도 응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다음, 뒷자리에 앉아 있던 초라한 모습의 한 노인이 손을 들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가 그 그림을 사면 안 될까요?" 경쟁자가 아무도 없었으므로 그림은 자신이 가진 많지 않은 돈 전부를 건 그 노인에게 낙찰되었습니다.

노인은 피츠제럴드 아들을 어릴 때부터 돌보았던 하인이었던 사람입니다.
첫 경매가 끝나는 순간, 유언 집행을 맡은 변호사가 다음 진행을 중지시켰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유언장을 읽어내려갑니다.
"누구든 내 아들의 그림을 사는 사람이 내 모든 소장품을 갖도록 해 주시오. 이 그림을 선택하는 사람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으므로 모든 것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피츠제럴드는 그 아들을 소중히 하기 위해, 일생을 두고 생각을 다듬고 벼루어서 먼 나중을 감리하는 지혜를 발굴하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일랜드의 정치가이자 소설가인 피츠제럴드[Garret Michael FitzGerald, 1926.2.9~2011.5.19]가 쓴 작품속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소중한 것은 멀리서 번쩍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하찮게 여겨지던 바로 그것이 아닐까?를 생각해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흔히 '견디기 힘든 고통'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반대말이라 합니다.
견디기 힘들지만 견뎌야 하고 그러한 마음가짐일 때 견딜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 곳곳에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것은 현실적 어려움을 정신적 승리로 딛고 일어서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누군가 겪어내고 있는 고통과 고민들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미루어 짐작할 뿐,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크고 작은 시련들을 겪어가며 살아감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기에,

그리하여 헬렌켈러의 말처럼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한 것이기에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에도, 또 앞으로 다가올 시험에도 우리는 주저앉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코 나에게만 오는 비는 없다하였습니다,
비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단지, 우산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김종회저, '견딜 수 없는 고통'중에서 일부 인용 발췌함)


※피츠제럴드 [Garret Michael FitzGerald, 1926.2.9~2011.5.19]
아일랜드의 경제학자로 정계에 입문하여 외무장관, 수상을 역임하였다.
더블린 출생. 베르베데르대학교와 킹즈인대학교를 나온 후 오랫동안 경제학자로서 학문의 길을 닦았다. 1969년 정계에 투신하여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1973∼1977년 외무장관으로 있었다. 이어 통일아일랜드당 당수로서, 1981∼1982, 1982∼1987년 수상을 역임하였다. 저서에 《Planning in Ireland》(1968), 《Towards a New Ireland》(197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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